성지답사(BTBL) 성지칼럼  
 
 
예수님은 양의 문
관리자 2018-05-23 18:01:32 377


예수님은 양의 ‘문’            

한국 분들은 양을 무척 좋아한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양떼를 보면 탄성과 함께 시선을 띠지 못한다. 특별히 성지 순례차 이스라엘에서 그것도 유대광야에서 양떼를 만났다면 순례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황량한 유대광야, 울퉁불퉁한 산봉우리, 깊은 골짜기, 전혀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은 황량한 주변 환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요10:7). 군중들에게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유대광야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일을 비유의 소재로 택하셨다. 청중들에게 아무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없는 소재인 것이다. 이렇게 전혀 특별하지 않은 ‘목자와 양’에 대한 이야기를 비유의 소재로 사용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이 소재는 누구에게나 너무 친숙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해 시키는데 많은 말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비유는 어떻게 들려지는가? 낮 설 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의 관심은 필요하다. 유대광야가 어떤 환경인지 알지 못하고 2천 년 전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어떻게 양을 길렀는지 막연한 추측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7절 예수님은 당신을 이렇게 정의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이것은 예수님의 자기 소개서라고 말할 수 있고 정체성에 대한 자기선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왕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라 그저 '양의 문'이란다. 이는 비유니 여기에는 의미가 있을 테고, 그 의미를 이해 한다면 비유는 천 마디 글로 쓴 자기 소개서보다 더 힘이 있고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비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 유대광야나 이스라엘의 산지에서 목자들이 어떻게 양을 기르는지 알아야 한다. 

목자들은 아침에 양을 광야나 산지로 데리고 나가서 꼴을 먹이고 저녁이 되면 양의 우리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목자의 주거지에 따라서, 그리고 지역과 계절에 따라서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풀을 따라 이동하며 양과 함께 산지나 광야, 그리고 들녘에서 지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기후와 지형적인 특징, 그리고 목자들의 생활 방식 때문이다. 


첫째는 우기(11-4월)가 시작되면 보통 북쪽지역에서 먼저 비가 내리기 사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남쪽으로 확장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비의 양은 북쪽으로 갈수록 많고 남쪽으로 갈수록 적게 내리며, 서쪽이 많고 동쪽이 적게 내린다.  


이런 기후와 자연 환경 때문에 이스라엘은 북쪽지역에서 먼저 초지가 만들어지고 비를 따라 점점 남쪽지역으로 초지가 확장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길고 혹독한 건기를 지나온 목자들은 초지를 따라 북쪽과 남쪽을 오가며 양을 키우게 되는데 한번 집을 나서면 긴 시간을 광야나 산지에서 양과 함께 동고동락하게 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들이 이와 같은 목동 생활을 했던 것이다.


창세기 37:12-17 “12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야곱의 아들들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 초기에 양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 헤브론에서 북쪽 도단까지 150km 정도 이동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오래 동안 광야와 산지에서 생활하는 경우 밤이 되면 목자와 양은 바람과 맹수들을 피하기 위해서 자연 동굴이나 또는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간단한 양의 우리를 만들어 이용하게 되는데  이 때 목자는 돌로 울타리를 쌓고 그 위에는 가시덤불을 올려놓아 맹수들이 양 우리를 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목자는 모든 양을 우리에 모으고 자기는 정작 문이되어 밤을 보낸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7절에 ‘내가 양의 문이다’ 라고 말씀하신 팩트(fact)가 바로 이 그림에서 보시는 모습이다. 실제로 목자는 양의 문이 되어 밤을 꼬박 새운다. 그러니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먼저 문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살피면 알 수 있는데 첫째는 “출입하는 길”을 의미하고 다음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보호’를 의미한다. 또한 목자의 자기 희생없이 어찌 이런일이 가능하갰는가?



하지만 예수님이 의도하신 내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요10:9-10). 그것은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기도 하며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10:9-10절에 내가 바로 ‘구원의 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양을 위한 ‘길과 보호의 문’이 이제는 ‘구원의 문’이요 ‘생명의 문’으로 그 비유의 의미를 드러내신다.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신학적 견해, 구원론, 복음, 그런 것들로 설명할 필요 없이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이보다 쉽고, 명확하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의 방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 밖에 없듯이 양의 우리로 들어가는 문도 오직 하나밖에 없다. 이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공회 앞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 받을 수 없다고 선포했던 것이다.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예수님을 양의 문으로 비유하신 영적인 의미를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성막에서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다. 



성막 뜰 한편의 넓이는 25m 이다. 그 중에서 문의 넓이가 10m나 되니(출27:13-16) 면의 길이에 비하여 아주 넓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니(딤전2:4) 그 마음을 과도하게 넓은 문으로 나타낸것 아니겠는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를 200백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이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고 하나만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성막 문을 예수님을 상징하는 청색, 홍색, 흰색, 자주색으로 수를 놓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이 성막 문을 보며 양 우리의 문이되어 밤을 지새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오직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분이다.  예수님이 양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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